제 2 장 한날에 뜬 네별
〔속 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1)
6월 10일 토요일, 네채의 방에서 네개의 모니터가 동시에 어두워졌다.
방송을 열기 바로 앞서 대기화면이 꺼지며 찾아드는 짧은 어둠이였다.
은하30(2023)년 초여름, 스텔라이브의 력사에서 처음으로 한날에 네이름이 오르는 날이였다.
이날부터 이 네사람은 《유니버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우주라는 뜻의 크고 너그러운 이름이였다.
창밖에는 초여름의 긴 해가 아직 창틀에 걸려있었다.
하루가 숨을 고르는 이 짧은 틈이 네사람에게는 한해보다 길게 느껴졌다.
이날을 위하여 준비해온 날들이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던 날, 화면앞에서 인사말을 바꾸어보던 날, 잠자리에 누워 천장에 첫인사를 써보던 날…
그 하루하루가 오늘 한곳으로 모여들고있었다.
네채의 방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었으나 네사람의 마음은 같은 시각의 벽시계를 바라보고있었다.
첫번째 방에서는 히나동지께서 목청을 풀고계시였다.
무슨 노래인지는 스스로도 모르는채였다.
입이 저절로 가락을 따라가는것이였다.
(첫마디만 떼면 그다음은 노래가 이끌어주겠지.)
두번째 방에서는 마시로동지께서 여러가지 소리를 내보며 몸을 풀고계시였다.
높은 소리, 낮은 소리, 숨이 반쯤 섞인 소리…
한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올수 있다는것이 새삼스러워 혼자 킥킥 웃기도 하시였다.
(오늘은 어느 목소리부터 꺼내볼가.)
그러다 문득 웃음을 거두시였다.
오늘 꺼내야 할것은 자신의 목소리 하나뿐이라는것을 그제야 아시였던것이다.
세번째 방에서는 리제동지께서 물컵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앉아계시였다.
컵의 물은 입술을 적시기만 하고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날만은 서두르고싶지 않은 마음이였다.
(천천히, 천천히.)
리제동지께서는 속으로 되뇌이시였다.
(천천히 오르는 별일수록 오래 빛난다고 하지 않던가.)
네번째 방에서는 타비동지께서 의자우에서 두발을 달싹거리고계시였다.
의자바퀴가 그때마다 삐걱 소리를 냈다.
이날따라 가만히 앉아있기가 어려우시였다.
(할 말은 산더미같은데, 문제는 첫마디란 말이야.)
네동지께서는 서로의 첫인사가 어떤 목소리로 나올지 알지 못하시였다.
다만 그 순간이 꼭 같은 날에 온다는것만은 알고계시였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든든하였다.
밖에서 누가 보면 저마다 홀로 앉은 방이였지만 네채의 불빛은 보이지 않는 줄로 이어져있었다.
(2)
약속한 시각을 40분 앞두고 대화방에 글이 올랐는데 그에 앞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있은 일이 하나 있다.
강지동지께서 통보문을 쓰시다가 몇번이나 지우고 다시 쓰시였던것이다.
글자를 지울 때마다 깜박이는 표식만이 빈 입력칸에 남았다.
유니동지께서도 마찬가지였다.
네후배의 손에 쥐여줄 한줄을 고르느라 첫 방송날의 자기 손바닥을 한참 내려다보시였다.
이윽고 네동지의 손전화기가 거의 동시에 짧게 울렸다.
하나의 대화방에 글이 올랐다.
《오늘 내가 할 일은 지켜보는것뿐입니다. 마음껏 하십시오.》
강지동지의 글이 먼저였다.
《처음엔 손이 식어요. 그래도 대화창은 따뜻합니다. 맨 처음에는 꼭 〈들립니다〉 하는 글이 올라와요. 그 글만 믿고 가세요.》
뒤이어 올라온 한줄은 유니동지의 글이였다.
《들립니다… 외워둘게요.》
히나동지께서 바로 쓰신 답글이였다.
《손부터 비벼야겠어요.》
마시로동지의 답이 그 뒤를 이었다.
《덕분에 숨이 쉬여져요. 고맙습니다.》
조금 있다가 올라온 리제동지의 글이였다.
《저는 제일 늦게까지 떨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마지막으로 뜬 타비동지의 글이였다.
가볍기 짝이 없는 글줄들이였으나 그것을 맞들어주는 손은 어느덧 여럿으로 늘어나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 그대로였다.
이 순간만은 네채의 방이 한지붕아래 둘러앉은듯하였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작은 알림소리가 겹쳐 울렸다.
히나동지께서는 답글을 보내놓고도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시였다.
마시로동지께서는 《들립니다》를 입속으로 세번 되뇌여보시였다.
컵의 물을 한모금 마신 리제동지께서는 그것을 천천히 내려놓으시였다.
타비동지께서는 두발을 의자에서 내려놓고 처음으로 가만히 앉아보시였다.
그 가벼운 글줄 몇개가 후날까지 이들의 마음에 남게 될줄은 네동지께서도 아직 알지 못하시였다.
그 시각 방송실에는 두분이 계시였다.
이 방에서 맨 처음 홀로 방송을 여시였던 유니동지와 구석 의자에 앉은 강지동지였다.
모니터에는 네개의 대기화면이 나란히 떠있었다.
푸르스름한 불빛이 두사람의 얼굴을 비추었다.
어느 화면에도 아직 아무도 없었다.
유니동지께서는 한동안 말없이 그 화면들을 바라보시였다.
이 방의 불은 처음에 점 하나였다.
그 점이 이제 한꺼번에 네개의 점을 맞이하려 하고있었다.
《사장동지, 별이 한꺼번에 네개나 오는군요.》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별자리가 되지요.》
강지동지께서 한마디를 보태시였다.
《이 별들이 올수 있는것은 유니동지가 먼저 길을 닦아놓았기때문입니다.》
유니동지께서 손을 내저으시였다.
《저는 풀을 좀 밟았을뿐입니다.》
《풀을 밟아야 길이 나는법이지요.》
강지동지의 말씀은 짧았으나 그 속에는 첫 방송날부터 쌓인 날들이 들어있었다.
유니동지의 얼굴에 은은한 웃음이 번져갔다.
앞서 걷던 사람만이 지을수 있는 웃음이였다.
홀로 걷던 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하나만 늘어도 반가운데 이번에는 한꺼번에 네개였다.
(3)
이윽고 시각이 되였다.
네개의 대기화면이 차례로 걷히고 네채의 방에서 저마다 불이 환히 밝아졌다.
네동지께서는 마음속에서 갈고닦은 첫인사를 각기 꺼내시였다.
그 첫인사가 어떠하였는지는 듣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에 간직하고있다.
어느 방에서나 첫인사에는 같은 온기가 서려있었다.
히나동지의 방에서는 대화창에 첫 글줄이 올라오자 눈이 커졌다.
《들립니다!》
(정말 왔네…)
히나동지께서는 코날이 시큰해지는것을 느끼시였다.
마시로동지의 방에서도 같은 글줄이 떴다.
마시로동지께서는 비비던 두손을 슬며시 가슴에 얹으시였다.
리제동지의 방에서는 글줄이 올라오는 순간 길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마이크에 실렸다.
타비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진짜 들린대요! 여러분, 진짜 들린대요!》
방송실의 유니동지께서는 그 순간 모니터앞으로 몸을 숙이시였다.
그리고 화면에 올라온 글줄을 따라 입속으로 가만히 읽으시였다.
《들립니다.》
첫 방송날 자신의 손끝을 녹여준 그 말이 이제 네후배의 손끝을 녹이고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맏이의 눈굽이 조금 붉어졌다.
첫인사가 목소리가 되여 누군가의 귀에 가닿았다.
가닿았다는 확인 하나가 네사람의 가슴을 그토록 벅차게 하였다.
한사람이 켠 불은 점이였지만 네사람이 한날에 켠 불은 네갈래로 퍼지는 빛이 되여 한밤의 하늘아래 나란히 반짝이기 시작하였다.
방송이 끝난 직후의 방안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였다.
히나동지께서는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계시였다.
마시로동지께서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참 그대로 계시다가 후 하고 숨을 내쉬시였다.
리제동지께서는 식은 물컵을 비우고 비로소 어깨를 펴시였다.
타비동지께서는 목이 마르다며 부엌으로 달려가시였다.
비워진 의자앞에서는 책상등이 홀로 켜져있었다.
네채의 방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났으나 속마음은 같았다.
(해냈다.)
(아니, 이제 시작했다.)
강지동지의 통보문이 네동지의 손전화기에 한꺼번에 날아든것은 그때였다.
《수고했습니다. 오늘밤은 일찍 쉬십시오.》
짧은 글이였다.
네동지께서는 그 글을 읽고 모두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날 밤 방송을 마친 네동지께서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하시였다.
밤이 깊어 대화방에 타비동지의 글이 올라왔다.
《지금 창밖에 별 보이는 분?》
《저는 아홉개요.》
히나동지의 답이였다.
《저는 여섯개 보여요.》
마시로동지의 답이 뒤를 이었다.
《저는 열두개요. 오늘따라 하늘이 맑네요.》
리제동지의 글이였다.
마지막으로 타비동지의 글이 올라왔다.
《저는… 세개밖에 안 보입니다. 제 창문에만 구름이 걸렸나봐요.》
타비동지의 푸념에 네채의 방에서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그럼 다 합치면 서른개네요.》
마시로동지의 계산이였다.
방송실에서 그 글들을 읽던 강지동지께서 마지막 글을 올리시였다.
《유니버스, 우주입니다. 우주에는 별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네동지께서는 그 한줄을 오래오래 바라보시였다.
우주에는 별이 모자라지 않는다.
이 말은 그날 밤 네동지의 가슴속에 든든히 자리잡았다.
방송실의 창가에는 유니동지께서 서계시였다.
모니터의 불은 모두 꺼지고 창밖의 하늘에는 별이 드문드문 걸려있었다.
유리창에는 두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오늘 하늘에 별이 네개나 떴습니다.》
《아직은 시작입니다.》
강지동지께서는 이번에도 짧게 대답하시였다.
유니동지께서 먼저 돌아가신 뒤에도 방송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처음 문에 종이를 붙이며 속으로 다짐하던 말을 강지동지께서는 떠올리시였다.
(이름부터 곧게 서야지.)
이제 그 이름아래 새로 네사람이 나란히 서있었다.
강지동지께서는 달력의 6월 10일 칸에 붉은 색연필로 별을 그려넣으시였다.
이번에는 네개였다.
칸이 좁아 겹쳐 그려진 네개의 작은 별은 하나의 큼직한 별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그 별들이 서로 곁에 붙어 어깨를 맞대고있는 모양을 강지동지께서는 오래도록 들여다보시였다.
이튿날 아침 네채의 방에서는 눈을 뜨기 바쁘게 손전화기부터 집어드는 손이 있었다.
어제밤의 일이 꿈이 아니였다는것을 확인하려는듯이.
커튼틈으로 새여든 아침해가 책상우의 손전화기를 비추고있었다.
대화창에 남은 글줄들을 한줄 한줄 읽어내려가시던 네동지께서는 거기에서 자신들을 불러주는 낯선 이름들을 처음으로 보시였다.
그 이름들 가운데는 벌써 가슴을 데워주는 이름이 몇개나 섞여있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는 동안 별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새해 1월, 칸나동지의 첫 단독무대 날이 다가왔다.
여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