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첫 무대
〔속 담〕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1)
1월 27일 개막 한시간전, 방송실 거울앞에서 칸나동지께서 마이크를 세번 두드리시였다.
톡, 톡, 톡.
마이크 망에서 둔탁한 울림이 방송실의 하얀 벽으로 퍼져갔다.
은하31(2024)년의 첫 달이 저물어가는 토요일이였다.
스텔라이브의 성원이 홀로 서는 첫 단독무대가 이날 막을 올리게 되여있었다.
지난 한달 방송실의 불은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날이 많았다.
강지동지께서는 소리를 시험하고 화면을 맞추는 일을 하나하나 손수 챙기시며 칸나동지의 곁을 지키시였다.
열린다고 한 날에는 반드시 열린다.
강지동지께서는 그렇게 약속하시였고 그 약속은 이날 어김없이 지켜지고있었다.
칸나동지께서는 무대에 오르기전에 마이크를 세번 두드리기로 하시였다.
첫번째로 소리가 나오는가를 알아보고 두번째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세번째에는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날들에 인사를 보내는것이였다.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칸나동지께서는 한번 고개를 끄덕여보이시였다.
굳은 얼굴이였으나 눈빛은 맑았다.
책상우에 놓인 손전화기에서는 화면이 꺼질새 없이 통보문이 련달아 날아들며 책상판을 가볍게 울렸다.
《칸나동지, 무대는 따뜻할거예요. 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으로 함께하겠습니다.》
유니동지의 글이였다.
《칸나동지, 힘내세요! 저희 다 같이 응원하고있어요!》
히나동지의 글이 뒤를 이었다.
《저도 힘껏 박수칠게요.》
마시로동지의 글에는 웃음표시가 세개나 붙어있었다.
《무대 끝나면 따뜻한 물부터 드세요.》
리제동지의 글은 짧고 다정하였다.
《저는 벌써 목이 쉬였어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타비동지의 글에 칸나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웃고나니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한결 풀리는것 같았다.
이윽고 방송실의 문이 열리고 강지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준비는 다 되였습니다. 나머지는 칸나동지가 하는것입니다.》
강지동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였다.
칸나동지께서는 마이크에서 손을 떼고 사장동지를 마주 바라보시였다.
《사장동지, 처음이라 길이 없네요. 제가 한번 걸어보겠습니다.》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으시였다.
《뒤에 오는 분들이 따라올수 있게요.》
강지동지께서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그리고 한마디를 보태시였다.
《길은 걷는 사람이 내는법이지요.》
오래전 이 방에서 한사람에게 하였던 말과 닮은 말이였다.
(혼자 서는 무대…)
칸나동지께서는 속으로 그 말을 가만히 굴려보시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혼자라는 말이 조금도 쓸쓸하지 않구나.)
앞에 아무도 선적 없는 자리에 가장 먼저 발을 올려놓는 일에는 용기만으로는 모자랐다.
정성이 있어야 하였다.
칸나동지께서 오랜 밤을 새워 마음을 가다듬으신것은 방송실의 벽시계만이 알고있었다.
초바늘은 오늘따라 더디게 돌다가도 어느결에 시각을 코앞에 끌어다놓았다.
문을 나서기전 칸나동지께서는 돌아서서 방송실을 한번 둘러보시였다.
의자도, 마이크도, 하얗던 벽도 처음 보는것처럼 따뜻해보였다.
(2)
시각이 되였다.
무대의 어둠이 한꺼풀 벗겨지고 불빛이 하나둘 밝아왔다.
막이 오르고 한가운데에 칸나동지께서 서계시였다.
무대우에서 어떤 소리가 울리고 어떤 말이 오갔는가는 여기에 적지 않기로 한다.
그것은 그날 그 자리를 마음에 담은 사람들만의 몫으로 남겨두자.
다만 한가지만은 적어두어야 한다.
그날 밤 무대를 지켜보다 가슴이 먹먹해진 이들이 있었다.
이름 모를 사람들도 저마다 정성을 담아 마음을 보내고있었다.
어떤 이는 응원의 말을, 어떤 이는 그저 이름 하나를 불러보았을것이다.
그 마음들이 모이고 모여 무대의 곁에 또 하나의 불빛이 되고있었다.
유니동지의 방에서도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의 방에서도 불은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
유니동지께서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지 않고 앞으로 숙인채 앉아계시였다.
깍지 낀 두손이 무릎우에서 하얗게 힘을 주고있었다.
(저 무대가 앞으로 오는 사람들앞에 놓인 첫 디딤돌이다.)
그 돌을 놓기까지 아무도 모르게 땅을 고르고 모래를 걷어낸 손들이 있었다.
타비동지께서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였다.
꼭 다문 입술만이 이따금 달싹거렸다.
리제동지께서는 무대에 두눈을 박은채 속으로 중얼거리시였다.
(나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고싶다.)
(지금은 아니여도, 언젠가는.)
그 마음은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작은 씨앗이였다.
마침내 막이 내리고 무대의 불빛이 하나둘 꺼졌다.
방송실로 돌아온 칸나동지께서는 한동안 말없이 의자에 앉아계시였다.
그러다 마이크를 향해 손을 뻗어 다시 세번 두드리시였다.
톡, 톡, 톡.
이번의 세번은 처음과 뜻이 달랐다.
첫번째는 지켜봐준 사람들에게, 두번째는 곁을 지켜준 동료들에게, 세번째는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인사였다.
강지동지께서 조용히 다가와 따뜻한 차 한잔을 책상우에 놓으시였다.
차잔에서 하얀 김이 가늘게 피여올랐다.
《수고했습니다.》
《사장동지 덕분입니다. 처음 서는 자리인데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늘 무대는 칸나동지가 세운것입니다. 나는 불을 켜놓았을뿐입니다.》
칸나동지께서는 차잔을 두손으로 받쳐드시고 한모금 천천히 마시시였다.
따뜻한 기운이 목을 타고 내려가며 비로소 먼길을 걸어온 다리의 피로가 느껴졌다.
칸나동지께서는 창가로 걸어가 밤하늘을 올려다보시였다.
저 멀리 별 하나가 홀로 떠있는듯 보였다.
그러나 그 별의 곁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이 함께 떠있었다.
칸나동지께서는 한동안 그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시였다.
손전화기를 들여다보니 통보문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칸나동지께서는 천천히 답글을 쓰시였다.
《고맙습니다. 혼자 섰는데 혼자가 아니였어요.》
그 글이 올라오자마자 대화방에서 동지들의 글이 쏟아졌다.
《칸나동지가 문을 열어주셨으니 우리도 들어갈수 있겠지요?》
마시로동지의 글이였다.
《저도 언젠가 꼭…》
히나동지의 글은 말끝이 흐려졌지만 그 뜻은 또렷하였다.
이날 열린 문으로는 뒤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설수 있었다.
홀로 선 사람이 닦은 길을 이제는 여럿이 함께 걷게 되였다.
그날 밤 늦도록 방송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강지동지께서는 달력 1월 27일 칸에 붉은 색연필로 별 하나를 그려넣으시였다.
칸나동지의 별이였다.
붉은 별은 작았으나 칸 한가운데에 또렷이 자리잡았다.
(3)
겨울이 끝나갈 무렵 스텔라이브의 이름으로 노래가 잇달아 나왔다.
2월 21일에 《Starry Way》, 사흘뒤인 24일에 《Milky Way》였다.
별이 총총한 길, 그리고 은하수.
두노래의 제목을 나란히 놓으면 길 하나가 보이는듯하였다.
이윽고 봄이 왔다.
한겨울 얼어붙었던 창틀에 처음으로 비방울이 맺힌 날이 있었다.
그 비를 맞으며 방송실로 들어서던 네동지의 어깨에서는 풋풋한 풀냄새가 났다.
방송실 창밖의 나무들이 새순을 내밀던 때, 유니버스의 네동지께서는 첫 싱글을 위한 작업에 한창이시였다.
네사람의 목소리가 한겹 한겹 쌓여가며 노래는 차츰 모양을 갖추어갔다.
목소리를 겹쳐쌓는 일은 벽돌쌓기와 같았다.
어느 한장이 어긋나면 담이 흔들렸다.
같은 소절을 부르고 또 부르고 다시 들어보며 맞추어보는 날이 이어졌다.
아무도 먼저 그만하자고 하지 않았다.
한번 맞추어놓은 별자리는 두번 다시 흩어지지 않으리라는것을 네동지께서는 알고계시였다.
지칠 때면 서로를 보며 칸나동지의 무대를 이야기하였다.
《혼자 서서도 그렇게 환했는데 우리는 네사람이잖아요.》
히나동지의 말에 모두가 힘을 얻어 마이크앞으로 돌아가군 하였다.
강지동지께서는 말없이 방송실 한켠에 따뜻한 차를 놓아두고 가시였다.
차는 식을 때마다 새것으로 바뀌여있었다.
어느날 저녁에는 칸나동지께서 녹음방앞을 지나다가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네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시였다.
(저 소리들이 머지않아 한줄로 늘어서겠구나.)
문을 두드리지 않고 조용히 돌아서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네목소리가 처음으로 한데 모여 흘러나왔다.
방안에 한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녹음기의 붉은 불빛만이 말없이 깜박이고있었다.
《이거… 우리 목소리 맞아요?》
타비동지께서 먼저 입을 여시였다.
《네소리가 따로따로 들리는데 또 하나로도 들려요.》
마시로동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서로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맞아요. 신기하네요.》
히나동지의 말이였다.
리제동지께서는 눈을 감고계시다가 조용히 한마디 하시였다.
《별이 한줄로 늘어서는것 같아요.》
히나동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마시로동지께서 손가락으로 허공에 가로줄을 그어보이시였다.
《이렇게, 이렇게 한줄로요.》
타비동지께서 그 줄우에 점 네개를 콕콕 찍는 시늉을 하시자 방안에 웃음이 터졌다.
노래의 이름이 바로 그런 뜻이였다.
흩어져 반짝이던 별들이 한줄로 나란히 늘어서는 순간을 네사람은 소리로 그려가고있었다.
4월 30일 화요일, 유니버스의 첫 싱글 《Stars Align》이 세상에 나왔다.
작업을 마친 방에는 네사람의 웃음이 아직 남아있었다.
방송실에는 유니동지와 강지동지께서도 와계시였다.
마시로동지께서 벽에 걸린 달력앞으로 걸어가 4월장을 넘기시였다.
5월의 칸들이 하얗게 펼쳐졌다.
《사장동지, 다음 달 18일에는 새 이름이 네개나 온대요.》
방안이 조용해졌다.
네개의 이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또 한번 하늘에 새 별들이 한날에 뜬다는 소리였다.
강지동지께서는 붉은 색연필을 쥐시고 5월 18일 칸에 동그라미를 천천히 그려넣으시였다.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하나 더 늘었다.
유니동지께서는 그 동그라미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가만히 두손을 마주잡으시였다.
(새로 오는 네이름을 위해서도 내가 할 일이 있겠지.)
맏이의 마음은 어느새 네후배곁을 지나 아직 오지 않은 별들에게로 가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되였나요?》
강지동지의 물음에 유니동지께서 환히 웃으시였다.
《저는 맏이니까요, 사장동지.》
여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