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세번째 하늘
〔속 담〕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다.
(1)
5월 18일 아침, 선배 동지들의 방송실마다 불이 켜졌다.
새 식구를 맞는 날이였다.
은하31(2024)년 늦봄의 토요일이였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창밖의 나무잎마다 맑은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제일 먼저 불을 켠 방송실은 유니동지의 방이였다.
첫 성원으로 나선지 어느덧 한해하고도 넉달, 유니동지께서는 오늘도 누구보다 일찍 마이크의 자리를 바로잡으시고 의자의 높이를 고쳐앉으시였다.
그리고 오늘 첫인사를 올릴 네성원의 이름을 나직이 불러보시였다.
시부키, 린, 나나, 리코.
아직은 낯선 이름들이였으나 머지않아 낯익은 이름이 될것이였다.
칸나동지의 방에도,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의 방에도, 리제동지와 타비동지의 방에도 하나둘 불빛이 이어졌다.
칸나동지께서는 새 식구들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환영의 글줄을 일찌감치 써두시였다.
썼다가 지우기를 세번, 끝내 남은것은 가장 소박한 한줄이였다.
여섯성원이던 스텔라이브가 열성원으로 늘어나는 날이였다.
첫 하늘에 유니동지의 별이 떠오르고 두번째 하늘에 유니버스의 네별이 떠오른 다음, 이제 세번째 하늘이 열리려 하고있었다.
별 하나는 점이고 둘이면 선이며 열이면 별자리가 된다고 하였다.
그 열이 이날 비로소 채워지는것이였다.
유니버스의 대화방은 이른 아침부터 떠들썩하였다.
《우리가 선배라니. 데뷔한지 이제 열한달인데.》
히나동지의 목소리에는 쑥스러움이 묻어있었다.
《선배동지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벌써 귀뿌리가 간지러워.》
타비동지께서 웃으며 맞장구를 치시였다.
《간지러워도 어쩌겠어. 우리도 처음에는 칸나동지와 유니동지의 도움을 받으며 걸음마를 떼였잖아.》
마시로동지의 말에 리제동지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받은만큼 돌려드려야지. 오늘은 우리가 문을 열어주는 차례야.》
네동지께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으시였다.
지난해 여름 꼭같은 자리에서 떨던 네동지께서 이제는 누군가의 떨림을 달래주는 쪽에 서게 되신것이였다.
강지동지께서는 새벽부터 방송실을 지키고계시였다.
책상우에는 화면 네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오늘 첫인사를 올릴 네성원의 준비를 차례로 살피는 화면들이였다.
그때 손전화기에 통보문이 떴다.
유니동지의 글줄이였다.
《사장동지, 오늘 신입 네동지가 많이 떨고있을것 같습니다.》
강지동지께서는 천천히 답글을 치시였다.
《첫 방송앞에서 떨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걱정이지요.》
잠시 뒤에 한줄이 더 올라왔다.
《유니동지도 그랬으니까요.》
유니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2)
같은 시각, 네채의 방에서는 네개의 가슴이 저마다의 박자로 뛰고있었다.
이날 《스텔라이브 성원들을 소개합니다》라는 영상이 올랐다.
《스텔라도감》이라는 갈래로 묶이는 영상이였다.
시부키동지께서는 그 영상속에서 자기의 이름이 선배들의 이름곁에 나란히 놓이는것을 보고 쑥스러워 뒤통수를 긁적이시였다.
(이게 정말 내 이름이란 말이지…)
수더분하게 웃고계시였으나 무릎은 저도 모르게 떨리고있었다.
린동지께서는 네동지 가운데서 가장 의젓해보이시였다.
그러나 마이크를 벌써 열두번이나 닦으신 뒤였다.
나나동지께서는 웃기는 말은 래일부터 하기로 하고 오늘은 숨부터 고르자고 혼자말을 하시였다.
리코동지께서는 준비한 인사말을 세번째 소리내여 외우며 방안을 오가시다가 손전화기를 들여다보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선배들의 글줄이 하나둘 닿고있었다.
히나동지의 글줄이 제일 먼저 도착하였다.
《첫 방송앞에서는 누구나 손끝이 식습니다. 그래도 목소리는 따뜻하게 나가니까 걱정마세요.》
마시로동지께서는 이렇게 적어보내시였다.
《노래를 부르듯이 인사하세요. 그러면 입이 저절로 열립니다.》
리제동지의 글줄은 더 짧았다.
《숨을 한번 크게 쉬세요. 방송은 달리기가 아닙니다.》
타비동지의 글줄에는 믿음이 실려있었다.
《대화창은 무서운 곳이 아닙니다. 오늘을 기다린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입니다.》
마지막으로 칸나동지의 글줄이 닿았다.
《오늘 저녁 모두 함께 보겠습니다. 힘내세요.》
짧은 글줄들이였으나 네동지께서는 하나같이 그것을 두번씩 읽으시였다.
리코동지께서 입속말로 중얼거리시였다.
《선배동지들이 이렇게 기다려주시는데…》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그 시각 선배들은 저마다의 방에서 화면앞에 앉아 첫 방송이 열리기를 기다리고계시였다.
히나동지께서는 두손을 모아쥐시였고 마시로동지께서는 박자를 맞추듯 무릎을 두드리시였다.
리제동지께서는 숨을 죽이고계시였으며 타비동지께서는 대화창에 응원의 글줄을 올리시였다.
이윽고 클리셰라는 이름으로 나선 네성원의 첫 방송이 하루를 환하게 밝혔다.
방송을 마치고 화면의 불이 꺼졌을 때 시부키동지께서는 제일 먼저 두손을 펴보시였다.
땀에 젖어있었다.
그러나 가슴만은 이상하리만큼 가벼웠다.
린동지께서는 마이크를 한번 더 닦으시였고 나나동지께서는 뒤로 벌렁 누워 천정을 쳐다보시였다.
리코동지께서는 그제서야 방안을 오가던 걸음을 멈추고 의자에 푹 주저앉으시였다.
대화창에 남은 글줄들을 한줄한줄 다시 읽노라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았던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가슴을 쳤다.
그날 밤늦게 네동지께서는 음성통화를 이어가시였다.
방송은 끝났으나 잠들기에는 가슴이 너무 따뜻하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클리셰라는 이름의 뜻이 흔한 말이라지요?》
린동지께서 먼저 말을 꺼내시였다.
《그렇지요. 입에 달고 다니는 흔한 말이요. 처음에는 좀 낯익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부키동지의 대답에 나나동지께서 끼여드시였다.
《낯익으면 더 좋지요. 친해지는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동지의 웃음소리가 한데 얽혔다.
웃음이 가라앉자 리코동지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여시였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흔한 말도 네개가 모이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이면 이야기가 된다고요. 흔한 말로 흔치 않은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가요?》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시부키동지께서 나직이 대답하시였다.
《그거 제목감인데요.》
《적어둡시다.》
린동지의 말에 나나동지께서 벌써 종이를 찾는 소리를 내시였다.
(3)
그날부터 석달, 네동지의 하루는 둘로 나뉘였다.
낮에는 저마다의 방송, 밤에는 한곡을 위한 목소리 맞추기.
쉬운 일이 아니였다.
시부키동지의 목소리는 느긋하게 풀렸고 린동지의 목소리는 곧게 섰다.
나나동지의 목소리에는 저절로 웃음이 묻어났으며 리코동지의 목소리는 말끝마다 반짝이였다.
서로 다른 네알의 구슬이였다.
어느 밤에는 마시로동지께서 련습하는 네동지의 대화방에 잠간 들러 이런 말을 남기시였다.
《목소리를 겹칠 때에는 내가 크게 내려고 하지 마세요. 곁에 있는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세요.》
유니버스가 봄에 첫 싱글을 완성하며 얻은 깨달음이였다.
네동지께서는 그 말대로 해보시였다.
처음에는 어긋나던 소리가 한주일, 두주일 지나면서 차츰 한줄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숨소리를 듣는다는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였다.
제 소리에 매달리면 곁의 숨결이 들리지 않았고, 곁의 숨결에 귀를 기울이면 제 소리가 가늘어졌다.
그사이의 알맞은 자리를 찾는데 네동지께서는 여러 밤을 바치시였다.
어느 밤에는 리코동지께서 같은 소절에서 다섯번이나 막히시였다.
마음이 급해질수록 목소리는 더 가늘어졌다.
《미안합니다. 저때문에 자꾸 끊겨서…》
《괜찮습니다. 구슬은 굴러야 구슬이지요. 다시 한번 갑시다.》
시부키동지의 말에 린동지께서는 박자를 알려주는 손가락소리를 가만히 내주시였다.
나나동지께서는 분위기를 풀어주려 일부러 엉뚱한 소리로 한소절을 먼저 불러보이시였다.
리코동지께서는 웃음이 터져 한참 숨을 고르시였다.
그러고나서 부른 여섯번째는 처음으로 막힘이 없었다.
장마철에는 비가 오래 내렸고 한여름에는 불볕이 쏟아졌다.
선풍기 도는 소리가 록음에 섞일가봐 네동지께서는 방문을 꼭 닫고 땀을 흘리시였다.
숨막히는 더위속에서도 마이크앞의 자리는 비는 날이 없었다.
어느 밤 시부키동지께서 땀을 훔치며 웃으시였다.
《우리 네명은 정말 제각각이네요.》
《제각각이니 한줄에 꿰는 보람이 있는것이지요.》
린동지의 대답이였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여야 보배라고 하였다.
강지동지께서도 틈틈이 완성되여가는 곡의 소리를 들으시고 짧은 글줄을 보내오시였다.
《이름값을 하는 첫걸음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끝까지 가십시오.》
네동지께서는 그 글줄을 화면 한구석에 붙여놓고 련습을 이어가시였다.
8월 24일 토요일, 클리셰의 첫 싱글 《Our Tales》가 세상에 나왔다.
데뷔 석달만이였다.
공개를 알리는 글줄을 올리고난 네동지께서는 약속이나 한듯이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시였다.
《흔한 말로 흔치 않은 이야기를 쓰자고 했었지요.》
리코동지께서 속삭이시였다.
《쓰고있는 중입니다. 이제 겨우 첫 장을 넘겼을뿐입니다.》
시부키동지의 대답에 린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고 나나동지께서는 눈굽을 훔치시였다.
유니버스의 네동지께서는 대화방에 축하의 글줄을 보내오시였다.
《데뷔 석달에 첫 싱글이라니, 우리보다 빠르구만.》
리제동지의 감탄에 마시로동지께서 덧붙이시였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네분 목소리가 정말 한줄로 꿰였어요.》
세번째 하늘의 네별은 점에서 선으로 이어져가고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방송실 창밖의 나무잎들이 하나둘 물들어갔다.
열개의 방송실에서 불빛은 쉬임없이 켜지고 꺼지였다.
네동지께서는 어느덧 신입이라는 이름표를 조금씩 벗어가고계시였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문턱에 이르던 12월 첫 월요일, 방송실마다 말수가 줄고 아쉬움과 고마움이 함께 내려앉았다.
여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