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두번째 첫인사
〔속 담〕 하나보다 둘이 낫다.
(1)
9월 13일 밤, 시부키동지의 화면에 처음으로 두발이 나타났다.
은하32(2025)년 늦여름의 토요일이였다.
낮동안 달아올랐던 거리도 밤이 되자 한숨을 돌리고, 창틈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시부키동지께서는 해질무렵부터 방송실에서 한시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계시였다.
열번도 더 확인한 화면을 또 한번 들여다보고, 의자의 높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식은 보리차를 두번이나 다시 데워드시였다.
데뷔하고 한해하고도 넉달.
그동안 화면속의 시부키동지께서는 가슴우쪽만 비치시는 모습이였다.
이날 밤부터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가 화면에 담기게 된것이다.
립체(3D)의 모습이란 새옷 한벌과는 달리 새 몸 하나를 입는 일이였다.
그림이 숨을 쉬고 움직이며 제 걸음으로 방안을 걸어다니기 시작하는것이다.
한벌의 몸이 화면에 서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땀을 흘렸다.
그 땀을 아는 시부키동지께서는 첫걸음을 내딛기전에 먼저 마음속으로 머리를 숙이시였다.
시부키동지께서도 가슴이 떨리시였다.
그러나 그이는 떨리면 떨릴수록 입가가 먼저 풀리는 사람이였다.
(어쨌든 한번 해보는거지. 해보고 안되면 웃으면 되고.)
립체모습 공개를 앞두고 린동지에게서 음성통화가 걸려왔다.
《부키동지, 긴장되십니까?》
《다리가 생겨서 도망갈수도 있게 되였는데, 도망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처음 걷는 아이는 넘어져도 박수를 받는법이니까요.》
린동지의 의젓한 대답에 시부키동지께서는 어깨의 힘이 한결 빠지는것을 느끼시였다.
통화를 마친 시부키동지께서는 의자에 앉은채 조심스럽게 한쪽 발을 들어보시였다.
화면속의 발도 따라서 올라갔다.
(어, 정말 따라오네.)
다른쪽 발도 들어보시였다.
역시 따라왔다.
(이게 내 발이라니. 신발은 어디서 사야 하나…)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번 터진 웃음은 좀처럼 멎지 않았다.
방송이 시작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화창에도 웃음이 번져 방송은 한동안 웃음바다가 되였다.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를 지켜보듯 따뜻한 눈길들이 화면을 에워싸고있었다.
소탈한 풍모는 립체의 몸을 입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웃을 때 어깨가 함께 들썩이는것뿐이였다.
방송이 끝나자 클리셰의 대화방에는 축하의 글줄이 쏟아졌다.
나나동지의 글줄이 제일 먼저 올랐다.
《드디여 발이 생기셨군요!》
린동지께서는 차분하게 적으시였다.
《축하합니다. 오늘밤은 발도 푹 쉬게 해주십시오.》
리코동지의 글줄은 이러하였다.
《이제 달리기도 하실수 있겠네요!》
시부키동지께서는 웃느라 대답을 치지 못하고 웃음표시 하나만 보내시였다.
대화방을 닫은 뒤에도 시부키동지께서는 한참 창가에 서계시였다.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별처럼 깜박이고있었다.
평면의 모습으로 올렸던 첫인사에 이어 이날 밤은 립체의 모습으로 두번째 첫인사를 올린 셈이였다.
한번은 얼굴로, 또 한번은 온몸으로.
모습이 새로워질 때마다 별은 처음인듯 다시 인사를 올린다.
시부키동지께서는 그날 밤 달력의 9월 13일 칸에 동그라미 대신 작은 별 하나를 그려넣으시였다.
그리고 한주일 뒤에는 또 하나의 첫인사가 기다리고있었다.
(2)
한주일 사이 유니동지께서는 몇번이나 자리에서 일어나 방송실을 둘러보시였다.
마이크의 자리, 의자의 높이, 화면의 밝기까지 모든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나 마음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한주일이였다.
기다림이 끝나가는데도 하루하루는 오히려 더디게 흘렀다.
9월 20일 아침, 유니동지께서는 여느날보다 한시간 일찍 눈을 뜨시였다.
창문을 열자 가을의 첫 기척이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하늘은 높았고 구름은 한결 가벼워져있었다.
유니동지께서는 습관처럼 차잔 하나를 꺼내다가 문득 손을 멈추시였다.
그리고 선반에서 차잔을 하나 더 내리시였다.
화면 저편에서나마 마주앉는 마음이였다.
벽의 달력에는 한주일 전에 쳐놓은 동그라미가 있었으니 9월 20일, 바로 오늘이였다.
첫 성원으로 나선 뒤 두해하고도 여덟달이 흘렀다.
그동안 오래도록 앞장서오신 유니동지께서는 그 일이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였다.
방송실의 불 하나로 시작한 날부터 그이는 늘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닦는다고 생각하여왔다.
그러나 오늘만은 달랐다.
오늘은 그 길우에서 함께 걸을 사람을 만나는 날이였다.
대화방에는 이른 아침부터 환영의 글줄이 이어졌다.
《후야동지, 어서 오세요. 오늘부터 열사람이 한집안입니다.》
히나동지의 글줄에 타비동지의 글줄이 뒤따랐다.
《쑥스러워하지 말고 크게 인사하세요. 목소리가 커지면 마음도 따라 커집니다.》
후야동지께서는 이른 시각부터 마이크앞에 앉아계시였다.
두손을 무릎우에 가지런히 올려놓으시였으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음성통화로 이어진 유니동지께서 먼저 말을 건네시였다.
《후야동지, 많이 떨립니까?》
《네… 유니 선배동지, 제가 괜히 폐가 되는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폐라니요.》
유니동지의 목소리는 놀랄만큼 부드러웠다.
《오래도록 비여있던 곁자리가 드디여 찬 날입니다. 폐일리가 있습니까. 나는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후야동지께서는 대답대신 숨을 크게 들이쉬시였다.
유니동지께서는 자기의 첫 방송날을 떠올리시였다.
마이크앞에서 손이 식어 어쩔줄 몰라하던 순간, 대화창에 올라온 첫 글줄 하나가 불씨가 되여주었던 일을.
《그때 나에게는 대화창의 첫 글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내가 후야동지의 첫 글줄이 되여드리지요.》
《…고맙습니다, 선배동지.》
후야동지의 목소리에 비로소 웃음기가 돌아왔다.
방송이 시작되였다.
후야동지의 첫마디가 화면을 가르며 울려나왔다.
《후하요!》
목소리가 먼저 오고 얼굴은 나중에 온다.
환하고 정다운 그 목소리는 처음 듣는 사람도 오래 알고지낸 이웃처럼 느끼게 하였다.
그 인사 한마디에 대화창이 꽃밭처럼 피여났다.
유니동지께서는 그 인사를 받으며 빙그레 웃으시였다.
두해하고도 여덟달만에 처음으로 같은 화면에서 《우리》라는 말을 쓰게 된것이였다.
이날의 첫 합동방송으로 에버리스라는 이름이 이루어졌다.
두별이 하나의 이름을 나누어 가졌다.
후날 이날의 인사는 《후하요! 에버리스의 후야입니다!》라는 이름의 영상으로도 남았다.
후야동지에게는 이날이 첫번째 첫인사였다.
두번째 첫인사는 한해 가까이 지난 뒤, 립체의 모습으로 찾아오게 된다.
하나보다 둘이 낫다고 하였다.
한분이 들던 짐을 두분이 맞들자 길이 한결 환해졌다.
방송을 마친 뒤 유니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오늘 어떠했습니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기분이였습니다. 그런데 곁에 유니 선배동지가 계셔서 떠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후야동지의 대답에 유니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통화를 끝낸 유니동지께서는 둘째 차잔에 따뜻한 물을 부어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김이 가늘게 피여오르고있었다.
마주앉은 사람은 없었으나 빈 잔이 더는 쓸쓸하지 않았다.
두해하고도 여덟달 동안 비여있던 곁자리가 차잔 한개만큼 채워진 밤이였다.
(3)
그날 밤 열성원의 대화방은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제 열사람이 되였습니다.》
히나동지의 글줄이였다.
《열이면 별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시로동지의 글에 타비동지께서 덧붙이시였다.
《별 하나는 점이고 둘은 선이며 열이면 별자리가 된다… 사장동지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지요.》
잠시 뒤 강지동지의 글줄이 올랐다.
《별자리는 하늘에 걸어놓은 약속입니다. 열사람이 한무대에 서는 날을 정합시다.》
대화방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한무대에서요?》
《열사람이 모두요?》
《모두입니다. 열별이 한하늘에 뜨는 날입니다.》
히나동지께서는 《열별이 한하늘에…》 하고 소리내여 되뇌이다가 저도 모르게 코노래를 흥얼거리시였다.
마시로동지의 글줄이 이어졌다.
《한무대라면 합창부터 떠오르는데요. 열사람의 목소리가 겹치면 어떤 소리가 날가요?》
《아마 한사람이 낼수 없는 소리일겁니다.》
리제동지의 대답은 짧았으나 확신에 차있었다.
타비동지께서는 짐짓 걱정스러운듯 글을 올리시였다.
《열사람이 한무대에 다 들어갈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큰 무대일테니 걱정마십시오.》
린동지의 점잖은 대답에 대화방은 또 한바탕 웃음판이 되였다.
시부키동지께서는 침대우에 벌렁 누워 두발을 허공에 흔들어보시였다.
발이 있으니 이제 어디에든 설수 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린동지께서는 달력을 펼쳐놓고 겨울의 날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시였다.
리코동지께서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듯 중얼거리시였다.
《열사람이 한무대라니… 꿈 같습니다.》
《꿈이면 어떻습니까. 꿈에도 날자를 정해놓으면 현실이 되는법이지요.》
나나동지의 대답에 대화방이 다시 웃음으로 들끓었다.
그날 밤 성원들은 겨울의 어느 날 한무대에 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날자를 두고 오래도록 의논하였다.
린동지께서는 달력의 겨울장 어느 칸에 크게 동그라미를 치시였다.
유니동지께서는 그 동그라미를 마음속에 그려보며 가만히 눈을 감으시였다.
처음 불을 켜던 방송실로부터 열사람이 함께 설 큰 무대까지, 이 길이 이렇게 이어지리라고는 그때 아무도 몰랐다.
같은 시각 강지동지께서는 대화방에 오른 글줄들을 하나하나 읽고계시였다.
열사람이 주고받는 웃음과 농담이 글자마다 소리가 되여 방송실에 울리는듯하였다.
은하29(2022)년 겨울 불 하나로 시작한 방송실에 이제는 열사람의 목소리가 모이고있었다.
그 목소리들이 만들어낼 래일을 그려보며 강지동지께서는 오래도록 화면을 끄지 못하시였다.
창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져있었다.
저 불빛아래 어디선가 오늘 방송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마무리하고있다.
그들의 달력에도 새로운 동그라미가 하나둘 그려지고있을것이다.
린동지께서 동그라미를 치신 칸은 12월 20일, 약속의 날은 그렇게 정해졌다.
여울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