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33(2026)년 10월 17일
장편사화 《별자취》 (9) 열린 거리, 닫힌 거리

제 9 장 열린 거리, 닫힌 거리

〔속 담〕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1)

9월 14일 저녁 6시, 가상의 거리의 문이 열렸다.

은하33(2026)년 가을문턱의 월요일이였다.

그러나 그 문을 밀고 들어서는 이들의 옷깃에는 아직 여름의 물기가 마르지 않고있었다.

이야기는 3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월 24일, 스텔라이브의 공식 화면에 열별이 한자리에 모인 예고화상이 올랐다.

《스텔라와 함께하는 여름휴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시원한 웃음으로 식혀보자고 마련한 여름철 기획의 이름이였다.

열사람은 저마다 새옷, 곧 신의상을 준비하고있었다.

신의상이란 가상인물이 갈아입는 새로운 옷차림을 이르는 말이다.

먼저 삽화로 그려진 옷이 립체모형으로 옮겨져야 비로소 화면속에서 인물과 함께 움직이는 한벌의 옷이 되는것이다.

한벌의 옷이 화면에 오르기까지는 그만큼 많은 사람의 땀이 들어간다.

예고화상은 한꺼번에 오르지 않았다.

8월 30일에 후야동지와 타비동지께서 첫날을 여시였고 이튿날에는 마시로, 나나, 히나 세동지께서, 그다음날에는 리코, 시부키, 유니 세동지께서 그 뒤를 이으시였다.

나흘째 되는 9월 2일에는 린동지와 리제동지께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비치시였다.

파스텔들은 달력의 날자를 손꼽아가며 날마다 화면앞에 모여앉았다.

9월 1일, 히나동지께서는 새 수영복과 함께 새로운 머리모양과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시였다.

(올여름은 이 얼굴로 노래를 부르리라.)

히나동지의 밝은 웃음이 화면가득 번졌다.

9월 3일에는 린동지와 리제동지의 신의상이 공개되였다.

이날 리제동지께서는 새 옷차림과 함께 새로운 리깅, 곧 화상구동으로 모습을 나타내시였다.

리깅이란 삽화속의 인물이 화면에서 살아있는듯 움직이도록 뼈대를 심어주는 일을 말한다.

눈빛도 몸짓도 새롭게 달라지니 파스텔들은 이내 《리제 2.0》이라는 별명을 지어 불렀다.

《2.0이라니, 갱신된 프로그람같네요.》

이 말을 전해들으신 리제동지께서는 쑥스러운듯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래도 마음은 처음 그대로입니다.》

 

9월 7일 월요일은 타비동지의 탄생일이였다.

립체모습으로 진행한 생일축하방송에는 원래 쉬는 날이였던 리코동지께서 손님으로 찾아와 함께 노래를 불러주시였다.

쉬는 날을 선뜻 내놓고 달려온 리코동지의 마음이 곧 생일선물이였다.

9월 8일에는 후야동지의 영상 《너무너무 예쁜 후야의 첫번째 신의상!》이 올라 파스텔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였다.

9월 12일, 열별 전체의 수영복 신의상 단체공개영상이 공식채널에 올라 여름기획은 막을 내렸다.

9월 13일은 시부키동지께서 립체모습을 처음 보이신지 한돐이 되는 날이였다.

이날 시부키동지의 유튜브 구독자는 23만명을 넘어서 경사에 경사가 겹쳤다.

새옷을 입고 서로를 마주보며 웃던 열별은 이제 또 한벌의 옷을 입으려 하고계시였다.

이름이 바뀌고 직업이 바뀌는 옷, 배역이라는 옷이였다.

(2)

GTA5 인생극봉사기 《봉누도2》.

참가자들이 가상의 도시에서 저마다 맡은 배역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방송놀이였다.

스텔라이브는 이 놀이를 후원하였고 성원들도 여럿이 거리의 주민이 되였다.

개막에 앞서 강지동지께서는 응급구조대(EMS) 면접관이 되여 방송을 하시며 거리의 식구가 될 이들을 맞이하시였다.

응급구조대란 위급한 일이 터진 곳으로 맨먼저 달려가는 이들을 이르는 말이다.

문을 열던 날 저녁에만 같은 시각에 방송을 보는 사람의 수, 곧 동시시청자수가 10만에 이르렀고 그날 가장 높을 때는 약 17만을 헤아렸다.

처음 210명이였던 거리의 주민은 3주를 지나는 사이에 240명으로 늘어났다.

강지동지께서는 병원장 《도현정》이 되시였다.

9월 15일, 흰 가운을 입은 병원장의 첫 출근방송이 시작되였다.

《오늘부터 이 병원을 맡게 된 도현정입니다. 환자도 직원도 아프지 않게 하겠습니다.》

회사에서나 병원에서나 한결같이 성실한 분이라는것을 사람들은 첫마디에서 알아보았다.

시부키동지께서는 경찰 《정지해》가 되시였다.

나나동지께서는 씨드머니의 농부 아줌마 《한세월》이 되여 들판에서 사람들을 웃기시였다.

히나동지께서는 기자 《명총희》로, 리코동지께서는 방송국 기자 《신이비》로 거리를 누비시였다.

두기자는 서로 취재수첩을 맞대며 다니는 한짝이였다.

후야동지께서는 응급구조대원 《구해영》으로, 린동지께서는 《청운강》으로 저마다 거리의 한자리를 차지하시였다.

방송에서 오간 일을 하나하나 적을수는 없으나 그 거리의 정경은 대략 이러하였다.

아침이면 병원앞에서 구급차의 싸이렌소리가 울렸고 들판에서는 아줌마의 구성진 타령이 흘러나왔으며 경찰은 순찰을 돌고 두기자는 수첩을 들고 이집저집을 찾아다녔다.

어느날 밤에는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큰길로 달려왔다.

경찰 정지해가 길을 열어주었고 응급구조대원 구해영은 환자를 병원으로 옮겼으며 병원장 도현정은 문앞에서 기다리고있었다.

세사람의 손이 하나로 맞물리니 위급한 순간도 한결 가벼워졌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더니 가상의 거리에서도 그 말은 어김없었다.

병원의 불은 밤늦도록 꺼지지 않았고 병원장은 아침마다 제일 먼저 출근하였다.

사람들은 이 거리에서 서로의 이웃이 되여 3주를 살았다.

나나동지의 한세월 아줌마가 벌인 재판소동도 분노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났다고들 하니 그 거리의 인정이 어떠하였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거리안의 일은 어디까지나 배역의 일이였다.

병원장은 병원장이고 경찰은 경찰일뿐, 화면밖의 그들은 변함없는 한식구였다.

그 선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였기에 배역의 이름을 쓰고도 서로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는 일은 없었다.

 

거리가 한창 소란스럽던 9월 18일은 금요일이였다.

금요일은 거리가 쉬는 날이였고 이날 저녁 6시에는 후야동지의 립체 데뷔 실시간방송이 열리게 되여있었다.

평면(2D)모습으로 첫인사를 하신 때로부터 한해를 기다려 맞는 날이였다.

《구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거리의 응급구조대원이 이날만은 배역옷을 벗고 후야동지로 돌아오시였다.

방송을 앞둔 오후, 유니동지로부터 통보문이 날아들었다.

《후야동지, 오늘 저는 에버리스의 맏이가 아니라 첫 파스텔이 되겠습니다.》

후야동지께서는 화면을 보고 한참 웃으시다가 답을 보내시였다.

《그럼 저는 첫인사를 또 한번 하는셈이네요. 후하요!》

쉬는 거리의 주민들도 방송시각이 되자 배역옷을 벗어놓고 화면앞에 모여앉았다.

정지해의 제복을 벗으신 시부키동지께서, 신이비의 수첩을 덮으신 리코동지께서 같은 화면을 지켜보고계시였다.

6시가 되자 방송제목이 화면에 떠올랐다.

《후하요! 통통꼬리 용가리 3D 데뷔!》.

첫마디는 역시 《후하요!》였다.

아홉별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한사람을 위해 같은 순간을 기다리고있었다.

거리의 문은 닫혀있었으나 화면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이틀이 지난 9월 20일, 에버리스는 결성 한돐을 맞았다.

유니동지와 후야동지께서는 합창 커버곡 《비바해피》를 공식채널에 올리시였다.

한해전 단둘이 처음 마주앉았던 자리에 이제는 열별의 응원이 가득 쌓여있었다.

9월 24일부터 나흘동안 거리밖의 방에서는 마시로동지께서 혼자 《방구석 뮤지컬》의 무대를 꾸미시였다.

한목소리가 여러 인물을 오가며 방안을 가득 채우였다.

(3)

10월 4일 일요일 밤 9시 36분, 《봉누도2》의 마지막 콘서트가 막을 올렸다.

122분동안 스무팀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는 3주 대장정의 마감무대였다.

화면앞에서는 수많은 파스텔들이 3주동안 정든 거리의 마지막 밤을 지켜보고있었다.

거리의 주민들은 저마다 배역옷을 입은채 마지막 무대앞에 모여들었다.

정지해도, 명총희도, 신이비도, 한세월 아줌마도 한자리에 모였다.

《순찰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저도 오늘은 취재수첩을 덮겠습니다.》

《이 들판도 이제 쉬겠구만.》

농담처럼 오가는 말끝에 서운함이 고여있었다.

스무팀의 노래가 차례로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3주의 하루하루를 가슴속에서 한장한장 넘기고있었다.

병원장은 마지막 환자를 돌려보내고 조용히 병원문을 닫았다.

3주동안 병원을 지켜온 그 손길은 이날도 다름이 없었다.

강지동지께서는 그전날인 10월 3일에 《EMS 송별회..》라는 제목의 방송을 시작하시여 4일 새벽 3시 13분까지 이어가시였다.

 

콘서트의 끝곡은 3주전 이 거리의 문을 열던 오프닝곡 《Break Out》이였다.

그 노래를 부르는 인물은 리제동지께서 맡으신 《야루》였다.

새 리깅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신지 한달이 지난 리제동지께서는 목소리를 끝까지 이어가시였다.

마지막 소절에 이르러 리제동지의 가슴에는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3주전에는 이 노래로 문을 열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화면 한쪽으로 고마움과 아쉬움의 글줄이 끝없이 흘러내렸다.

공식일정의 마무리인사는 밤 11시 38분에 있었다.

이어 10월 5일 0시 14분, 3주동안 열려있던 거리의 봉사기가 닫혔다.

차례로 불빛이 꺼지고 화면은 어둠에 잠겼다.

열려있던 거리는 닫히였지만 거리에서 쌓은 정은 닫히지 않아 3주동안 주고받은 웃음은 열별의 가슴속에 또 하나의 거리로 옮겨갔다.

나나동지께서는 4일에 7시간 7분동안 《[봉누도2] 세월이 아줌마》를 이어가시며 들판의 이야기를 매듭지으시였고, 강지동지와 린동지께서도 마지막 방송으로 3주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으시였다.

거리의 사람들은 이제 모두 제 이름으로 돌아왔다.

통보문 하나가 열별의 손전화기를 차례로 울리였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이제 다음 불을 켤 시간입니다.》

보낸이는 사장동지이시였다.

다음 불이라니.

열별은 저마다의 방에서 서로의 얼굴을 떠올리시였다.

그들의 달력에는 아직 동그라미를 기다리는 날들이 남아있었다.

거리의 불이 꺼진 닷새뒤, 10월 10일 오후 5시 정각.

공식 화면에 4기생 데뷔예고영상이 올랐다.

여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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