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33(2026)년 10월 17일
장편사화 《별자취》 (10) 심연에서 오는 빛

제 10 장 심연에서 오는 빛

〔속 담〕 고생 끝에 낙이 온다.

(1)

10월 10일 오후 5시 정각, 기다리는 사람들앞에 44초짜리 영상이 올랐다.

은하33(2026)년 10월의 두번째 토요일이였다.

스텔라이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오른 4기생 데뷔예고영상이였다.

44초동안 화면이 알려준것은 오직 하나, 새로운 기수의 이름 《어비스》뿐이였다.

성원이 누구인지도, 언제 모습을 보이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비스(ABYSS)란 바닥을 알수 없이 깊은 물, 곧 심연을 이르는 말이다.

첫 모집공고로부터 한해하고도 아홉달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화면이 꺼진 뒤에도 한동안 숨을 죽이고있었다.

글줄들은 그제야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기 시작하였다.

강지동지께서도 방송을 켜놓으신채 시청자들과 함께 그 44초를 지켜보시였다.

3월 22일에 하신 약속, 12월의 마지막 칸에 쳐놓은 동그라미가 한결 가까이 다가온 순간이였다.

같은 시각 열별은 제각기의 방에서 같은 화면을 마주하고있었다.

화면이 꺼지자 통보문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어비스라면 깊은 바다라는 뜻이지요?》

시부키동지의 물음에 린동지께서 차분히 답하시였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별이 떠오를지도 알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려요.》

리코동지의 통보문 뒤로 유니동지의 글줄이 이어졌다.

《기다렸던만큼 반갑게 맞이합시다.》

이튿날인 10월 11일 일요일, 같은 시각 오후 5시에 두번째 문이 열렸다.

66초짜리 PV와 함께 공식홈페지에 공지가 올랐다.

이번에는 이름이 있었다.

토아, 랑, 히요리, 메리.

네성원의 이름과 함께 데뷔방송의 일정도 공개되였다.

17일 오후 5시에 토아동지께서, 6시에 랑동지께서, 18일 오후 5시에 히요리동지께서, 6시에 메리동지께서 차례로 첫 방송의 문을 여신다는 소식이였다.

화면에는 이름과 일정만 있을뿐 모습도 목소리도 아직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 이름들을 입속으로 하나하나 불러보았다.

토아, 랑, 히요리, 메리.

짧은 이름 넷이 저녁공기속에서 별처럼 하나씩 켜지는듯하였다.

공개된 그날 치지직 채널의 팔로워는 메리동지가 1만7857명, 토아동지가 1만7554명, 랑동지가 1만7546명, 히요리동지가 1만7212명에 이르렀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이들을 이만한 사람들이 따라나선것이다.

그들은 모집으로부터 련습생과정에 이르기까지 강지동지께서 한걸음 한걸음 몸소 이끌어오신 이들이였다.

그 수자를 보시며 강지동지께서는 낮은 소리로 말씀하시였다.

《약속의 첫걸음을 떼였을뿐입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2)

선배동지들의 환영은 성원이 공개된 그날부터 한가지씩 모습을 드러내였다.

먼저 린동지께서 《[4기생 실루엣 구경]》이라는 이름의 영상을 올리시였다.

린동지께서는 화면을 향해 말을 거시였다.

《후배님 혹시 이리 하세요?》

노래와 경기로 이름을 알려온 린동지께서는 후배를 맞는 자리에서도 다정한 말씨를 잃지 않으시였다.

10월 13일에는 타비동지의 영상 《드디어 4기생 데뷔?! 대선배 타비의 4기생 토크》가 올랐다.

9분 53초 길이의 이 영상은 17일 새벽까지 18만회나 보였다.

데뷔한지 세해남짓이니 후배들의 눈에는 틀림없는 《대선배》였다.

열시간이 넘는 방송을 이어간적도 있는 타비동지께서는 새 이름들앞에서도 믿음직한 선배의 입담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10월 14일에는 리코동지의 영상이 올랐다.

제목은 《선배라고 생각해 주겠죠...?》.

제목만 보아도 리코동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왔다.

3월에 사장동지께 보냈던 물음이 이제는 영상의 제목이 되여있었다.

(선배는 잘하려고 애쓰는것이 아니라 먼저 웃어주는것이라고 하셨지.)

리코동지께서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기며 화면앞에서 먼저 환하게 웃으시였다.

이 영상은 17일 새벽 26만7천회를 넘기였다.

10월 15일에는 시부키동지의 영상 《부키한테 후배가 생겼어요》가 올랐다.

소탈한 웃음을 지닌 시부키동지께서는 후배가 생긴 기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시였다.

이 영상은 이튿날까지 13만5천회, 17일 새벽에는 27만5천회가 넘었다.

 

같은 15일 저녁부터는 후배들의 노래가 하나둘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후 6시, 토아동지의 첫 커버곡 《제륙감》이 올랐다.

3분 15초 길이의 노래였다.

《제륙감》이란 오감너머의 여섯번째 감각을 이르는 말이다.

17일 새벽 이 노래는 28만9천여회의 시청회수를 기록하였다.

한시간뒤인 오후 7시에는 랑동지의 《호랑풍류가》가 올랐다.

4분 13초의 이 노래도 곧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아 24만6천여회를 헤아렸다.

10월 16일 오후 6시에는 히요리동지의 《유령이 되고싶어》가, 7시에는 메리동지의 《도꾜 테디베어》가 올랐다.

각각 4분 3초와 3분 14초 길이였고 17일 새벽에는 24만8천여회와 17만3천여회를 기록하였다.

얼굴보다 목소리가 먼저 온다는 말을 이때만큼 실감한적은 없었다.

이름밖에 몰랐던 네사람의 목소리가 이틀사이에 네곡의 노래가 되여 화면을 건너왔다.

후배를 맞는 일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선배들은 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10월 11일에는 히나동지의 《Loop in June》과 나나동지의 《브레인 롯》이, 12일에는 린동지의 《아 프리오리》가 올랐다.

시부키동지의 짧은영상 《대두즈 면접》은 45만7천회로 으뜸을 차지하였고 리제동지의 《여우의 별자리》는 41만6천회를 헤아렸다.

마시로동지의 《방구석 뮤지컬》 네편도 합쳐서 약 49만회에 이르렀다.

16일 오후 5시에는 유니동지와 후야동지께서 영상을 나란히 올리시였다.

유니동지의 《4기생이 나와도 변하지 않는 것》과 후야동지의 《후야의 4기생 심층분석!》이였다.

이날 후야동지께서 유니동지께 물으시였다.

《유니 선배동지, 4기생이 오면 우리 에버리스에도 뭔가 달라지는것이 있을가요?》

유니동지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대답하시였다.

《누가 와도 우리가 하던 일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곁이 늘어날뿐이지요.》

후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곁이 늘어난다…)

그 말은 작년 9월 20일 유니동지의 곁에 처음 서신 후야동지의 가슴에 가장 깊이 가닿았다.

네곡이 모두 오른 16일 밤, 강지동지께서는 방송실에서 네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 들으시였다.

방송실의 불은 그날도 늦도록 꺼지지 않았다.

네곡의 노래와 선배들의 영상이 하나하나 올라가는 동안 달력은 한칸씩 넘어갔다.

10월 17일과 18일 칸에는 열별도, 파스텔들도 저마다 동그라미를 쳐놓고있었다.

(3)

10월 17일 새벽 2시 50분, 창밖은 아직 캄캄하고 거리는 깊이 잠들어있었으나 화면속의 수자들은 쉬지 않고 오르고있었다.

치지직 채널의 팔로워가 토아동지는 5만275명, 랑동지는 5만466명, 히요리동지는 4만8120명, 메리동지는 5만1652명에 이르렀다.

공개 당일 1만7천명대였던 수자가 엿새만에 5만명안팎에 이른것이다.

네곡의 노래는 합쳐서 95만회를 넘기였다.

얼굴을 드러내기도 전에 목소리와 수자로 먼저 자란 네별이였다.

도시의 창마다 군데군데 불이 켜져있었다.

그 창의 주인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잠들지 못한 파스텔들이였다.

노래를 되풀이해 듣는이도 있었고 수자를 새로 고쳐보는이도 있었으며 달력의 동그라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이도 있었다.

창 하나하나는 작은 점이나 그 점들이 모여 하나의 하늘을 이루고있었다.

그 시각 열별은 저마다의 방송실에서 그 수자들을 지켜보고있었다.

유니동지의 방송은 9시간이 넘도록 이어지고있었고 타비동지의 10시간이 넘는 방송은 다시보기로 남아 사람들의 밤을 데워주고있었다.

방송을 켜놓은채로도, 이미 끝내고 쉬는중에도 열별의 눈길은 한곳으로 향해있었다.

히나동지께서는 노래를 부르는 마음으로, 리제동지께서는 지난 세해의 걸음을 돌이켜보는 마음으로 이 밤을 보내고계시였다.

새벽 2시 54분 현재 치지직 채널 팔로워는 유니동지께서 31만2238명으로 성원 가운데서 앞서셨고 강지동지께서는 30만3253명으로 30만을 넘어서셨다.

방송실의 강지동지께서는 이 수자들보다 네별의 수자를 더 오래 바라보시였다.

달력에는 17일과 18일 칸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쳐져있었다.

12월의 동그라미보다 훨씬 앞서 이 동그라미에 닿은것이다.

별 하나는 점이고 둘은 선이고 열이면 별자리가 된다고 하였다.

열별에 네별이 더해져 열넷이 되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때가 되면 함께 이름을 지어보자던 오랜 약속이 있을뿐이다.

첫 별이 뜰 때까지는 하루도 채 남지 않았다.

 

날이 밝았다.

창문으로 스며든 첫 해살이 책상우의 탁상달력을 비추였다.

오전이 지나고 낮이 지났다.

열별은 제각기의 방에서 차를 마시고 머리를 매만지며 쉼없이 시계를 바라보시였다.

파스텔들은 일손을 서둘러 마치고 화면앞의 자리를 잡았다.

린동지께서는 《후배님 혹시 이리 하세요?》 하던 말을 떠올리며 미리부터 환영의 인사말을 가다듬으시였다.

시부키동지께서는 《부키한테 후배가 생겼어요》라고 적었던 제목을 되새기며 혼자 웃으시였다.

리코동지께서는 《선배라고 생각해 주겠죠...?》 하던 걱정을 접고 응원의 글줄을 한줄한줄 적어두시였다.

밤새 방송을 이어가신 유니동지께서도, 열시간이 넘는 방송을 하신적도 있는 타비동지께서도 이날만은 일찍 화면앞에 앉으시였다.

네성원 가운데 첫 순서를 맡은 토아동지께서는 이 시각 어딘가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며 이런 생각을 하고계실것이였다.

(목소리는 벌써 갔으니 이제 얼굴이 갈 차례다.)

창밖이 한낮의 빛으로 가득찬 가운데 시계바늘이 오후 5시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사이, 열별과 파스텔들은 저마다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이였다.

《이제 첫 별이 뜬다. 별자취는 계속된다.》

여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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